남들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만 치매가 진행되면 언어능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 차츰 힘들어 집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사람은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의 기본 원칙을 잘 활용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의사소통 기본원칙
01. 의사소통은 마음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의사소통능력이 감퇴되더라도 감정은 오랫동안 유지됩니다. 언어능력의 장애가 심한 치매환자도 마음으로는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고, 이를 표정과 행동으로써 표현할 수 있습니다.
02. 대화 내용은 간단명료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복잡하고 긴 내용은 한 번에 한 가지씩 구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가지를 얘기한 후 잠시 기다려서 치매환자가 이해했음을 확인한 후에 다음 얘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을 할 때에도 한 번에 한 가지씩 묻는 것이 좋으며,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도록 묻거나(“산책 다녀오실래요?”),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묻는 것이 좋습니다(“커피 드실래요? 아니면 주스 드실래요?”).
치매환자가 대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경우에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한 번 얘기해 보세요. 그래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표현을 쉽게 바꾸어서 얘기해 보세요.
03. 편안하고 조용하며 차분한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치매환자들은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의사소통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차분한 환경을 만들도록 해야 하며, 의사 표현을 위해 애쓰는 환자에게 재촉은 금물입니다.
주의를 산만하게 만드는 소리 및 요소들을 제거하세요. 치매환자는 불필요한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 저하되어 있기 때문에 주변이 시끄럽거나 산만하면 이해하는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너무 춥거나 더운 곳, 너무 어두운 곳, 불편한 의자나 자세 등이 모두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04. 말 뿐만 아니라 시선이나 표정, 행동도 중요합니다.
치매가 진행되어 언어기능이 떨어질수록 환자는 비언어적 방법에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대화를 할 때는 치매환자를 마주 보고 시선을 마주치며 얘기를 나눕니다. 상대방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치매환자가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대화 내용에 어울리는 표정을 짓고, 적절한 몸짓을 사용하세요. 환자가 대화 내용을 이해하기가 수월해 집니다.
중요한 부분에서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여 관심을 보이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면서 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좋습니다.
05. 귀가 잘 들리시나 확인하세요.
우선 치매환자가 당신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지 확인하세요. 노년에는 청력 저하가 매우 흔합니다.
청력이 좋지 않은 노인은 높은 톤보다 낮은 톤이 훨씬 알아듣기 쉬우므로 목소리의 톤은 낮추되, 또박또박 정확하고 크게 말합니다.
06. 환자의 마음이 상처받지 않게 배려해 주세요.
치매환자가 잘 표현하지 못할 때 재촉하거나 핀잔을 주기 보다는 환자를 격려하며 끈기 있게 기다려 주세요. 치매환자가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워하는 경우 힘겹게 단어를 기억해 내도록 내버려두기 보다는 당신이 직접 그 단어를 말해 주는 편이 더 좋습니다.
치매환자가 틀린 단어를 사용하더라도 치매환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이해하면 굳이 정확한 단어를 알려주지 않아도 되며, 불필요하게 잘못을 지적하여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치매환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에는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하거나 손가락으로 물건을 가리켜보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거기 이모쿠 좀 다오.”라고 할 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죄송하지만 이모쿠가 어떤 것인지 말씀해 주시겠어요?”하고 물어보고, “길다란 것”이라고 대답한다면 “그 물건을 가리켜 보세요.”라고 부탁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치매환자가 말하고 있는 내용보다 표현된 감정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말하는 것 이면에 감추어진 감정을 살펴보세요. 말씨, 어조, 그리고 다른 행동들이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경도 치매환자는 단어를 기억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능력이 저하되어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와 상황을 배려하여 적절하게 반응하면 충분히 대화하고 관계를 맺어갈 수 있습니다.
경도 치매환자의 언어장애
치매의 종류에 따라 언어능력의 저하가 진행되는 속도는 다르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다음과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환자가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경도 치매환자에서 가장 흔한 언어증상은 가끔씩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머뭇거리는 것입니다. “저것”, “그것”과 같은 표현을 자주 사용하게 됩니다.
사물의 이름 대신 그에 대한 설명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반지를 ‘둥그런 것’이라고 하거나 넥타이를 ‘목에 매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혼동하거나(가위 - 가지), 의미가 유사한 다른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감자 - 고구마).
치매가 진행되면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할 수 있습니다. 문장 속에 있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설명을 듣는 사이에 앞부분의 내용을 잊어버리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문장 이해력이 떨어져서 신문이나 책 읽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잘 읽으려 하지 않게 되고 뉴스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직접 얼굴을 보며 들은 내용은 이해하지만 전화로 들은 내용은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자도 있습니다. 일부러 모르는 척 한다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글을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메모 내용을 소리 내어 읽을 수 있다고 해서 그 의미를 다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도 치매환자와의 의사소통
치매환자의 경우 몇 번 본 사람이라도 이름이나 직업을 잘 기억 못할 수도 있으니 확실히 기억할 때까지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친근감 있게 본인의 소개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복잡한 문장은 피하고 가능한 한 짧고 간단한 문장들을 사용하세요. “점심시간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서 한참 기다려야 되니까 더 늦기 전에 지금 잠깐 은행에 다녀올게요.”라고 말하는 대신, “지금 은행에 다녀올게요.”라고 말씀하세요.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요청하세요. 치매환자는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이해하거나 한꺼번에 기억하기 어려워 할 수 있습니다. “마트에 가야 하니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화장을 하고 코트를 입으셔야 해요.”라고 말하면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일들을 단계별로 쪼개어서 하나씩 말씀드려야 합니다.
되도록 천천히 말하고, 환자가 답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치매환자는 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원하는 표현이 잘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치매환자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설명할 시간을 주어야 하며, 치매환자의 말을 중단시키기 않도록 조심합니다. 기다리는 동안 당신이 환자의 말을 듣고 있다는 몸짓이나 표정을 지어줍니다.
어떤 화제든 환자에게 이야기하기 전에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후 얘기하시면 듣는 사람이 이해하기가 훨씬 쉽습니다.
환자의 말을 되풀이 해주거나 요약해서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합니다.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한 번 더 말해줍니다. 특히 시간이나 장소 등을 알릴 때는 반복해서 따라 말하게 합니다.
화제를 갑자기 바꾸지 않도록 합니다. 하지만 만약 화제가 갑자기 바뀌었다면 “지금 OO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라고 말해줍니다.
일상생활에서 불필요하게 대상자를 테스트하는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대상자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수치심을 느끼거나 자존심을 손상시키는 질문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이 물건 이름이 뭐지요?”,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시겠어요?” 라는 식의 질문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지적하거나 잘못을 고치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일부 치매환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받은 적이 없는데 돈을 주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통장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 못하고서 누가 훔쳐갔다고 의심할 수도 있습니다. 치매환자의 이런 말과 행동은 치매로 인한 증상이므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실에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환자의 입장에서 기분을 공감해 주고 환자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어머니, 통장이 없어져서 걱정이 많이 되시겠어요. 저랑 같이 찾아보실래요?”).
답답함이나 분노를 비롯한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합니다.
돌보는 이가 환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치매환자도 옛날 일들은 잘 기억하곤 합니다. 뜻 깊은 추억이나 과거의 즐거웠던 에피소드를 떠올리면서 이야기하도록 유도해 보세요.
꼭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환자가 물어보기 전에 미리 이야기해 줍니다. 환자가 질문할 기회를 깜박 잊어버려 놓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안경이나 보청기, 틀니 등이 맞지 않을 경우에도 언어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편안하게 잘 맞는지 확인해 봅니다.
언어능력의 장애는 매일 똑같은 정도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좀 더 좋은 날이 있고, 좀 더 나쁜 날이 있습니다. 때로는 몸이 좋지 않거나 먹고 있는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의사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갑자기 증상이 나빠질 경우에는 의사와 상담하도록 합니다.
뇌졸중으로 인한 언어장애의 경우는 급성 뇌졸중 상황을 어느 정도 극복한 후에 언어치료를 받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치매가 진행될수록 이해력이나 표현력이 떨어지게 되며 나중에는 의사소통이 많이 어려워집니다. 심한 치매 단계에서는 옹알이같은 소리만을 내거나 아무 말 없이 사람을 쳐다보기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가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할지라도 치매환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을 전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중고도 치매환자와의 의사소통
환자의 호칭을 이름을 포함하여 부릅니다(“박OO 할머니~”). 이는 환자가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대화를 시작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대화자를 알아보지 못할 때는 자신의 이름을 말해 줍니다. “제가 누군지 아시겠어요?”라고 테스트하듯이 묻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대화할 때는 시선을 맞추세요. 마주보며 이야기하면서 표정이나 입모양으로 시각적인 자극을 줍니다. 웃는 얼굴로 차분하고 상냥하게 대합니다.
초기 치매환자에서와 마찬가지로 청력저하 여부를 확인하고, 청력저하가 있는 경우 낮은 톤으로 또박또박 크게 말합니다. 말하는 속도를 천천히 하도록 신경을 쓰고, 말을 할 때는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긴 문장으로 논리와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말합니다. 질문을 할 때에도 한 번에 하나씩 묻습니다. 무엇을 요청할 때에도 분명하고 단순한 순서로 한 번에 한 단계씩 하게 합니다.
환자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중요한 단어는 반복하거나 강조하여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 인삼차 드세요. 인삼차요.”라고 할 때 ‘인삼차’에 강세를 두고 말합니다.
이야기하면서 몸짓이나 표정, 사진 등으로 이야기를 보충합니다.
문장이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할 때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고 좀 더 쉬운 단어로 바꾸어 말합니다. 한자어보다 쉬운 한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대변보러 가실래요?”보다는 “똥 누러 가실래요?”, “진지 맛있죠?” 보다는 “밥 맛있죠?”라는 낮춤형태의 말이 이해하는데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을 “그 사람”, “그 아이”라고 하지 않고 이름으로 부릅니다.
부정문을 쓰지 않고 긍정문으로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 가지 마세요.”보다는 “여기로 오세요.”라고 말합니다.
대답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치매환자에게는 집중하고, 이해하고, 대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만일 환자가 한참이 지나도 대답하지 않으면 다시 질문합니다.
환자의 반응에 대해 격려하고 칭찬합니다.
환자의 발음이 불분명할 때는 말을 되받아서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분명히 확인하고 넘어갑니다.
비언어적 메시지도 놓치지 않습니다.
이야기 하는 동안 환자가 안심할 수 있도록 손이나 어깨를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토닥여줍니다.
환자가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과 환자의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은 환자를 무시하는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읽고 쓸 수 있다면 방안의 모든 사물에 이름이 적힌 라벨을 붙입니다.
환자가 사실이 아닌 얘기를 하더라도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보다는 환자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가 이미 돌아가신 엄마를 찾는다면 “엄마는 오래 전에 돌아가셨잖아요.”라고 말하기보다는 “엄마가 그리우시군요.”라거나 “엄마가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주세요.”라고 제안해 봅니다.
말다툼이 되지 않도록 합니다. 대상자가 말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면 그대로 둡니다. 말다툼은 대부분 상황을 더 악화시킬 때가 많습니다. 만약 불가피하게 약간의 의견 충돌이 있다면 한발 뒤로 물러서고 일단 말다툼을 종료하는 것이 좋습니다.
인지기능이 심하게 저하된 환자에게는 부담을 주고 무언가를 하도록 요구하는 방식보다는 미리 대상자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자꾸 무언가 생각하고 대답하도록 부담을 주면 대상자는 어쩔 줄 몰라 불안감과 초조감이 증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언어능력이 심하게 저하된 대상자가 화장실 주위 복도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이고 있을 때 “어디 찾으세요?”하고 물어본 후 대답을 기다릴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화장실 문을 열어드리며 “어르신, 여기 화장실이에요.”하고 설명하여 환자의 욕구를 해결해주는 것이 더욱 바람직합니다.
절대로 환자를 깔보거나 어린아이 대하듯이 말하지 않습니다. “어구구~ 할매, 오늘은 똥 안 쌌지? 사탕 줄께. 맛있게 먹어~”와 같이 어린아이 대하듯 말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닙니다. 환자는 언제나 품위 있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성인으로 대해야 합니다.